“성장 전망의 기본 시나리오를 설정하기도 어려워졌다.”(이창용 한국은행 총재)
한국은행이 17일 내놓은 ‘경제상황 평가’를 보면, 한국 경제는 내란발 내수 침체에 미국발 관세 충격이 겹치면서 한치를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에 진입하고 있다.
내란·관세 충격에 경기 ‘급전직하’
한은은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역성장 할 수 있고, 연간 성장률도 두달 전 전망(1.5%)을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. 이창용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“1분기에 큰 산불이 발생할지 몰랐고, 정치 불확실성이 오래 갈지도 몰랐다. 미국 관세 충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(전망치가) 애초 예상보다 나빠질 것 같다”고 말했다. 실제 1분기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면 지난해 2분기 이후 3개 분기 만이다. 윤석열 정부 집권 기간 동안 분기 기준 마이너스 성장은 지금껏 두 차례나 있었다.

한은이 1분기뿐 아니라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을 하향 예고한 건, 무엇보다 미국발 관세 충격과 미-중 무역 분쟁 우리 경제에 끼칠 영향이 “예상보다 크고 광범위하다”고 봤기 때문이다. 한은은 “미국과 중국은 우리 수출의 약 40%를 차지하는 2대 교역국인데 두 나라의 통상 갈등 피해는 다른 경쟁국보다 한국이 더 클 수 밖에 없다”고 말했다. 특히 관세 전쟁은 금융시장 불안 등 간접 경로를 통해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은은 짚었다. 이 총재는 “미국 관세 정책 강도와 주요국 대응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만큼 전망의 기본 시나리오조차 설정하기 어렵다”고 말했다.
“올해 성장률 상당폭 하향조정”…0%대로 가나
국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잇따라 하향조정하고 있다고 한은은 전했다. 지난 10일 기준 주요 40개 글로벌 투자은행(IB) 및 경제예측기관들의 전망(중간값 기준)은 1.4%, 하위 25% 전망값은 1.1%다. 지난해 11월(2.0%)보다 전망치를 큰 폭으로 조정한 것이다. 이 총재는 “수정 전망치는 기존 전망(1.5%)보다 상당히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”고 말했다.

한은은 정부가 추진중인 ‘12조원 추가경정예산(추경)’이 올해 성장률을 0.1%포인트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. 한은은 지난해 말 15조원 정도를 적정 추경 규모로 제시한 바 있다. 이 총재는 “연초 추경 필요성을 강조한 건 국내외에 계엄 충격 이후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와 정경 분리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차원이었다”며 “지금은 그런 상황은 지났다”고 말했다. 추경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를 정부가 실기했다는 취지다.
5월 금리인하 기대는 커져…‘빅컷’ 주장도 나와
한은이 심각한 경기 전망을 내놓으면서도 기준금리를 현 수준(2.75%)으로 동결한 건 ‘관세 불확실성’을 가늠하기 힘든 만큼 일단 지켜보자(wait and see)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. 이 총재는 “어두운 터널에 들어가면 일단 속도를 늦춰야 한다”는 말로 금통위의 고민을 드러냈다. 다만, 금통위원 6명 모두는 “3개월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”는 의견을 냈고, 그 중 한 명(신성환 의원)은 빅컷(0.5%포인트 인하) 필요성을 주장했다. 안개가 조금 걷히면 적극적인 통화 정책을 통해 경기 방어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.

시장에서는 다음달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. 연내 금리인하 폭을 시장 예상(연내 3차례)보다 확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. 이 총재는 “(시장 전망보다 금리 수준을) 더 낮출지는 5월에 베이스라인(기준점)을 정한 뒤 검토할 문제”라고 말했다.